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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순서지 및 설교 예시 -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성경에서는 초대교회부터 바울이 개척한 이방 교회들까지 가정교회의 모습과 흔적이 많이 발견됩니다. 지금처럼 많은 인원이 한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기 어려운 이유도 있었지만, 그만큼 가정을 중심으로 신앙교육이 잘 이루어지기도 했던것 같습니다. 그 힘이 복음과 신앙의 파워로 이어지며 말씀이 흥왕하여 전세계로 세력이 이어진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가정교육은 가정에서, 신앙교육은 교회에서 해야한다는 이분법적인 생각이 아닌, 가정에서 신앙교육을 같이 해 나간다면, 교회에서의 신앙생활도 더욱 탄력을 받고, 각자가 믿음있는 자녀와 구성원들이 될 것입니다.


가정예배의 순서와 설교 예시를 참조하셔서 각 가정에 맞게 창조적인 가정 예배를 드리시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이 될 줄로 믿습니다.

 

특히, 가정예배를 드릴 때, 어떤 설교를 준비하면 될지. 가장으로서 고민이 많으실겁니다. 같은 가장으로서, 일주일간 기도로 준비하고, 가족들과 나누었던 설교 말씀을 아래와 같이 공유하고자 합니다. 만일 어린 자녀가 있는 경우 더 쉽고 재미있게 각색하실 것을 권합니다.

 

가정예배 순서 예시

1. 찬양 - 새찬송가 337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2. 대표기도 - ㅇㅇㅇ (가족 구성원 중 한 명)

3. 말씀 및 축복의 기도 (가족 구성원 중 가장)

4. 주기도문 (목회자가 있는 경우 축도)

 

가정예배 설교 예시

주제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본문 :

마태복음 11장 28-30절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단골로 가는 식당 이라는 표현처럼 말씀도 단골로 주장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위 말씀이 대표적입니다. 저도 대학시절 믿음 초기 방황할 때, 이 말씀으로 큰 힘을 얻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은 어떤 것일까요?

 

마태복음 10장은 제자들을 선발하는 전도를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자들을 선발하자 마자 각 마을에 제자들을 보내 전도를 합니다.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말씀 하십니다. 너희의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않게 할 것이라고 하셨고, 너희를 영접하는 것이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제자들을 독려합니다.

 

마태복음 11장 본문 말씀을 하기 직전의 상황을 보면, 회개하지 않는 도시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태복음 11장

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셨는데, 그 마을이 회개하지 않아 책망하며 이야기 하는 장면입니다.

 

그 마을은 고라신과 벳새다 입니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 향기나무

 

보시다시피, 가버나움 주변 지역은 세관이 있고, 큰 회당이 많은 인구 밀집 지역이었습니다. 로마군대의 백부장이 있었던 것으로도 그 규모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고라신과 벳새다를 잇는 삼각 지역이 예수님의 주 활동 무대였습니다.

 

반면, 두로와 시돈은 풍요로운 항구 도시입니다. 두 도시 모두 로마시대 경마장, 거대한 목욕탕 공공 과장, 극장, 무덤을 포함한 로마 및 비잔틴 시대의 건축물들이 발굴되었습니다.

 

두로는 에스겔 26장에 심판에 대해 나와 있고, 이사야 23장에는 두로와 시돈을 경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두로와 시돈은 소돔과 고모라로 더불어 대표적으로 죄에 얼룩진 심판의 대상이 되는 도시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긴다는 표현.

 

아마도 가버나움 지역에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보다는 지식적으로도 뛰어나고, 돈도 많고, 마음이 부유한 자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이 지역은 율법도 잘 지켜 나가면서, 신앙적인 자부심도 대단한 유대인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봅니다. 바울도 율법주의자들에게 엄청난 저항을 받았듯이 이곳의 영적 지도자들은 사람들에게 율법을 엄격하게 적용했을 것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책망하면서 분몬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수고한다는 것은 헬라어로 '호이 코피온테스'인데, 분사 능동형인 것을 감안하면, 스스로 많은 일을 해서 계속 피곤에 지친 상태를 말합니다. 

 

무거운 짐진 자는 헬라어로 '페포르티스메노이'로, 현재분사 수동형인것을 감안하면, 타인에 의해 무거운 짐을 진 채 계속해서 지쳐있는 자들을 이야기 합니다.

 

특히 문맥에서는 회개치 않은 고을을 책망하며 이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율법과 종교로 짐을 지우는 잘못된 영적 지도자로 인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영적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종교를 가지지 않은 것보다 더 많은 피곤과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도 지속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다른 이들에게 피곤과 짐을 가중시키는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쉬게 한다는 것은 영원한 안식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모든 갈등 해소와 평안까지 포함되고 있습니다. 특히, 내가 쉬게 한다는 것이 강조되는데, 권위있는 초청을 의미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마음은 헬라어로 카르디아(뜻:심장)으로 예수님의 본질적 성품을 의미합니다. 이 표현은 이사야와 스가랴에서 예언된 예수님의 표현으로 볼 때, 예수님은 종으로서 타인을 섬기며, 고난을 당해서 타인의 아픔을 안다는 의미가 강하게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평생 가족이든 사회에서든 누군가와 함께 할 일이 있는데,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게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아픔, 우리의 고통을 제일 잘 아시는 분이라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원래 멍에라는 것은 집승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해서 그것을 부리기 위해 씌우는 도구입니다. 아래와 같이 두 가축을 묶어서 사용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사람이 멍에를 멘다는 표현은 당시 스승과 제자의 훈육 관계를 관용적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멍에를 메고 배우라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진리를 배우라는 신앙의 부르심입니다.

 

예수님이 다른 곳에서는 율법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표현도 하십니다.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쉼을 얻는다 에서 얻는다는 표현은 헬라어로 휴레세테(뜻:쉬다,발견하다)입니다. 쉼은 이미 예수님 품 안에만 있었는데, 사람들은 각자의 쉼을 찾아 방황합니다. 쉼이라는 것은 우리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예수님에게 있는 것을 찾고 인정하고, 발견하는 것입니다.

 

"내 멍에는 쉽고 가벼움이라"

쉽다는 것은 헬라어로 크레스토스(뜻:부드럽다,좋다,은혜스럽다,안락하다,친절하다) 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멍에는 가볍다고 합니다. 어거스틴은 예수님의 멍에를 새의 깃털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혼자 메도 될텐데. 그것도 예수님과 같이 메는 것이니 더더욱 가벼운 것이 은혜의 길인 것입니다.

 

 

 

저도 몸은 힘들지만, 선교를 자원하면서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는 것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가정예배를 드린다고 하면, 전할 말씀을 섬세하게 교제해주시고, 준비하는 것에 즐거운 마음을 주십니다. 선교에 있어서도 지속적으로 불가리아 목사님들과 개인적으로 근황을 전하며 교제하고 있습니다. 인도하심을 보면, 조금씩 전적으로 선교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7-8월 부터는 시간을 주실 것 같습니다. 

 

가게에서 혼자 매니저로 근무하면서, 눈치보지 않고, 말씀 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신지 알고, 그것을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쉼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멍에를 메고,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교제할 때 진정한 쉼이 됩니다. 

 

서울에 있을 때에는 모든 사람이 존경해주고, 더 진귀한 음식을 많이 먹었지만, 언제부턴가 비전이 없었고,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고 같은 곳을 향해 간다는 교감이 없었습니다. 교회 일에 메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것 같았습니다.

 

오늘 쉽을 얻는다는 표현. 휴레세테. 쉼을 발견한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 쉼을 더 누리기 위해, 공동체와 가정예배를 허락해 주심에 다시 한번 주님께 영광 돌립니다.

 

마지막으로 정리 해 보면, 왜 예수님은 가버나움, 벳세다, 고라신을 책망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영적 지도자에게 하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잘못된 영적 지도자에게서 잘못된 멍에를 메고 있는데도, 자기가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잘못 안고 있는 멍에가 있다면, 과감히 풀어 헤쳐야 합니다. 사람에게 메어 있나요? 물질에 메어 있나요? 자기 죄에 메어 있나요? 그것을 풀어 버려야 예수님과 함께 깃털처럼 가벼운 멍에를 멜 수 있습니다. 그래야 진정한 마음에 안식과 평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각자 돌아보시고, 기도하는 시간 가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