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특히, 가정예배의 말씀은 예언을 통해 가정의 덕을 세울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영적인 분위기를 통해 자녀들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고, 가장이 말씀을 연구하고, 설교를 준비하며 한 주를 경건하게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가정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가정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설교 주제 : 사랑을 공급하라
설교 본문 :
베드로후서 1:4-12 KRV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12]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베드로후서는 베드로의 유언 같은 편지입니다. 크리스챤을 핍박했던 네로황제가 68년까지 통치했는데, 64년부터 67년 사이에 베드로후서를 집필한 직후 로마에서 순교한 것으로 봅니다. 예수님과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사도들과 수많은 고난과 역경 가운데 영적 지도자의 역할을 했던 베드로의 액기스 같은 편지입니다. 주목해서 보면 우리 신앙에 많은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 후서 1장은 많은 덕목들이 나오는 어려운 본문입니다. 학창시설 윤리 도덕 교과서를 방불케 하는 성품의 단어들이 무섭도록 나열되어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도 한번에 이해가 잘 안갑니다.
4절에 썩어질 것들을 '피하여'는 헬라어로 '아포퓌곤테스'인데, 부정과거분사인 것을 고려하면 '피한 이래로' 라고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는 지금 현재 이것을 피해야 한다는 권고가 아니라, 세례받은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죄와 정욕과 거리가 멀어져 피하게 된다는 복음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뒤에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신의 성품에서 신에게 속했다는 의미인 헬라어 '데이아스'는 그 당시 헬라사상의 이교도적인 표현입니다. 그 당시 크리스챤이 아닌 이교도들은 성선설을 믿었는데, 본성에 내재된 거룩함을 잘 계발하면 완전한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이야기한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는 의미는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이 예수님과의 연합과 성령과의 교제로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5절에 더욱 힘써 공급하라는 것에서 공급하다는 헬라어로 '에피코레게사테' 인데 이것은 당시 무대의 공연 비용을 지불할 때 쓰이는 단어였습니다. 따라서 힘써 공급하다는 의미는 적극적으로 대가지불하고, 전적으로 지원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힘쓰라는 것은 아래와 같은 여러 덕목입니다. 이것들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믿음에 덕을'
믿음은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밑바탕 입니다. 베드로가 이 믿음에 덕을 공급하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덕은 헬라어로 '아레텐'인데 도덕적인 탁월성 혹은 바람직한 성격적 특성의 총합을 이야기 합니다. 믿음을 바탕으로 점점 성품이 탁월해 지는 과정이죠. 믿음이 성장하지 않으면 절대 성품도 탁월해질 수 없습니다.
'덕에 지식을'
지식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 내지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어느 순간 얻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덕을 추구하면서 하나님의 지혜가 성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지혜나 통찰력이 없으면 세상에서 악한 영을 분별할 수도 없고, 세상사람들을 향해 크리스챤으로서 지혜롭게 행동할 수도 없습니다.
'지식에 절제를'
절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히스기야와 다윗, 솔로몬의 예를 봐도 절제가 얼마나 추구하기 어려운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절제
'절제에 인내를'
인내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것이 성취되기까지 여러 고난과 유혹 가운데 참고 견디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절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라, 약속을 근거로 지속적인 인내를 할 때, 약속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인내에 경건을'
이러한 약속을 믿고 계속 인내하다보면 경건에 이릅니다. 경건은 헬라어로 '유세베이아' 인데, 독실하고 하나님께 헌신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성화되는 과정 즉, 예수님을 닮아가는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삶을 이야기 합니다.
이 정도 되면, 여기까지가 완전함에 이룬 것 같지만, 또 다른 두 덕목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완성하는 단계를 이야기 합니다. 그것이 형제우애와 사랑입니다 .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혈육을 나눈 가족간의 사랑을 초월해 믿음 안에서 지체가 된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를 이야기 합니다. 작은 공동체 안에서 폐쇄적인 우애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 안에 있는 다른 공동체의 친구 혹은 멘토와도 지속적으로 교제하고 우애를 추구해야, 서로 죄를 경계하며 자기만의 아집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이것을 추구해야 온전함에 이르는 과정에서 겸손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형제우애에 사랑을'
사랑은 다른 성경 구절에서도 모든 덕목들 가운데 으뜸으로 이야기 합니다.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희생하고, 믿음을 실제 삶에서 실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지체간의 사랑을 초월에 세상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높은 수준의 계명입니다.
공동체 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대인관계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선행과 친절과 사랑을 베푸는 것이 중요합니다.
크리스챤인 것을 이야기 했을 때, 크리스챤이었어? 물음표가 아닌, 아 역시 크리스챤이었구나! 느낌표를 이야기 하는 크리스챤이 되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나 세상에서 성숙하지 못한 자들도 우리가 품고, 친절함과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8절에 이 위의 덕목들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서 흡족하게 되었을 때, 예수님을 부지런히 알아가며 열매가 맺어진다고 합니다. 성품이 훈련되지 않으면 절대 세상에서 영적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도리어 크리스챤으로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10절에도 위의 덕목들을 추구하는 것이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굳게 한다는 것은 헬라어로 '베바이오스'인데, 변하지 않아 신뢰할만한 상태를 이야기 합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한결같이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실족하지 않는다고 약속합니다.
그 때, 11절처럼 넉넉하게 구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구원 받는 것도,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것도 크리스챤의 영원한 숙제인데, 이것이 넉넉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베드로의 생애에 있어서 이것이 신앙의 핵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도 성품훈련이 가장 어려운 영역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베드로의 삶 보면 중간에 비록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지만, 마지막은 누구보다 창대했습니다. 유세비우스라는 학자에 의하면, 베드로는 전도를 하는 가운데 바울과 비슷한 시기에 죽었고, 그의 요청에 따라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히는 처형을 당했다고 전해집니다. 끝까지 믿음의 길을 달려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까요? 오늘 본문의 작은 덕목도 무시하고, 내 뜻대로 행동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공동체 내에서도 사회에서도 크리스챤으로서 사랑와 선행과 친절이 아닌, 내 감정대로, 내 욕심대로 행동합니다. 오늘 말씀처럼 자기 삶에서 말씀에 착념함으로 믿음이 성장해 나가고, 덕을 세우며 지식, 절제, 인내, 경건에 이를 수 있습니다.
저도 가정예배를 시작하고, 일주일 내내 말씀을 준비하면서 많은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믿음이 세워져 가면서, 여러가지 성경적으로 마음에 걸리는 것들을 주의하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덕이 세워져 가고, 직장에서 지혜와 통찰력이 생기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소한 죄에도 예외를 두지 않으려는 절제할 수 있는 원동력도 생깁니다. 이러한 경건함에 이르는 과정을 계속 밟아나가며, 공동체 내에서 혹은 직장에서 영적인 열매가 맺혀지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8절처럼 이러한 훈련들을 흡족하게. 다른 번역으로 넉넉하게 잘 갖추어지도록 노력하고 있나요? 그리고 가장 첫 단계인 믿음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나요? 기초적인 QT나 성경읽기에 힘쓰고 계신가요?
베드로가 여러분들에게 말하는 간곡한 부탁이자 유언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믿음의 선배이자, 믿음의 길을 끝까지 간 베드로의 편지가 여러분들에게도 넉넉히 구원받는 축복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